겨울이 한창인 다람살라는 다른 계절에 비해 여행자도 뜸하고, 추위를 피해 남인도나 델리, 혹은 보드가야로 떠난 티베트인들도 많아 한적하기 그지없다. 택시와 오토바이가 뒤엉키던 돌마촉 갈림길이나 마을의 중심이라고 할만한 메인 스퀘어도 사람이 많지 않다.
사실 성수기의 다람살라, 정확히 맥그로드 간지는 좁은 길을 가득채운 버스, 택시, 오토바이 그리고 사람과 동물 덕분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여행자들이 너무 많아 물이 부족할 때도 있고, 들뜬 여행자들과 동네 사람들이 술을 먹고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하루키의 책에 나오는 그리스의 어느 관광지로 유명한 섬 사람들이 '(성수기인) 여름은 사람이 사는 게 아니에요'라고 푸념했다는 이야기가 다람살라에도 그대로 적용될 법한데, 차이가 있다면 다람살라는 겨울과 우기 몇 달을 빼고 일년 내내 성수기라는 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인도 TV에 다람살라가 인도의 알프스쯤으로 소개된 이후부터 여유가 좀 있는 인도인들은 다람살라로 휴가를 오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외국인 여행자에 더해 인도인 여행자들까지 다람살라를 찾아 오는 바람에 거의 일년 내내 북새통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일년에 얼마 안되는 한적한 비성수기의 다람살라가 나같은 거주민들에게는 무척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춥기는 하지만 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 추위도 덜해서 3000미터 가까운 산등성이인 트리운드까지만 눈이 내렸다. 그나마도 며칠 안 가 녹아버렸다.
네 달 만에 집에 돌아와와 보니 이곳에도 이런 저런 변화가 있다. 벨기에 아저씨가 운영하던 우리 집 앞 카페 일리떼라띠는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인도에서 제일 맛있는 파란타를 파는 이름없는 짜이집 아저씨는 멋내고 여기저기 다니시느라 정작 파란타는 청소년이 된 아들과 딸이 번갈아 만든다.
세입자들에게 방세를 받는 족족 술값으로 탕진하는 통에 가족들의 근심을 불러 일으켰던 우리 집 주인 아저씨는 작년 초에 비지니스를 한다며 한시간쯤 떨어진 노블링카 근처로 혼자 옮겨갔다. 갑자기 사라진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던 우리의 우려가 무색하게 몇 달 후 아저씨는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니러 왔다며 나타났다. 혼자 살면서 눈치 안보고 맘껏 술을 마셔서 병이 났다고 한다. 네 달만에 돌아와 보니 아저씨는 다시 노블링카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집 옆에 타이완 아주머니가 짓고 있는 4층짜리 건물은 아직도 완성이 되지 않았고, 맥간 올라가는 길목에는 5층짜리 초고층(!)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그보다 먼저 새로 문을 연 호텔은 창에는 통유리를 끼우고 건물 외관은 흰색과 빨간 색의 타일로 마감을 하고는 우뚝 서 있다.
동네 소식을 알고 동네 사람들과 안부 묻는다 것이 철든 이후로 가져보지 못한 경험이다. 어제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온 심런이 지난 몇 달 동안 어디 가 있었냐고 한다.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왔어."하고는 "Did you miss me?"라고 물었다. 수줍게 웃으며 "Yes, of course."라고 한다.
나도 물론, 여기가 그리웠고 돌아와서 기뻤다. 이런 저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가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